[백승철의 에피포도엽서] 아버지 걸음과 아들 뒷모습이 점 점 포개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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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를 끼고 병풍으로 산이 둘러있습니다. 겨울이면 호수가 얼어 유년시절 썰매를 타곤 했습니다. 풍경 좋은 곳은 어디든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인위적으로 길을 닦고 아스팔트를 만들고 콘크리트를 치고 사람들이 오고 간 흔적에 호수는 몸살을 앓아 매년 늙어갔습니다.
서울 사람들이 현지인 건물을 렌트해서 봄, 여름, 가을 장사를 했습니다. 약 3개월 호수가 얼게 되는 겨울은 장사를 중단하고 휴식기를 보냈습니다. 호수에 띄워졌던 배들도 겨울에는 육지로 올라와 뒤집어져 작은 산을 만들었습니다. 그 해 겨울이었습니다.
주인집 아들이 일곱 살 꼬마에게 와서 그 가게를 털자고 꼬드겼습니다. 손해 볼 것이 없었습니다. 주인집 아들은 겨울에 비어있던 가게로 들어가는 길을 소상히 알고 있었습니다. 남의 눈치를 살피면서 가게에 놓여있던 과자, 사탕, 껌, 음료수를 먹을 만큼 가지고 나와 뒤집어 놓은 배 공간으로 들어가 배를 채웠습니다. 아무 일 없다는 듯 그 다음 날도 똑 같은 일상을 반복했습니다.
세월이 그렇게 빨리 가는 줄 몰랐습니다. 겨울이 겉치고 봄이 성큼 눈썹 위에 앉았습니다. 봄이 오는 소리를 듣지 못했던 우리는 여전히 그 날도 주인집 가게를 털었습니다. 봄이 온다는 것은 서울 사람이 다시 장사를 오픈할 시기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신호였습니다. 주인집 아저씨는 서울 사람이 다시 문을 열 가게를 정리하기 위해 가게 문을 열고 들어 선 순간 수북했던 과자가 사라진 것을 목격했습니다.
주인아저씨는 과자 봉지가 길에 쌓여 드문, 드문 길을 연결해 놓은 곳 끝까지 가다 뒤집어 진 배 안에서 과자를 먹던 우리를 그 날 현행범으로 체포했습니다. 과자 봉지를 길거리에서 뜯어 버린 것이 결정적으로 꼬리 잡힌 원인이었습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겨울 내내 바람에 흩어진 과자 봉지가 길을 만들어 놓은 셈입니다. 주인아저씨는 시골에서 가장 욕을 찰 지게 잘했으며 거칠고 난폭했습니다. 한 번도 듣지 못한 욕을 창작해서 주인아저씨는 체포한 아이에게 쏟아 부었습니다. 꼬마는 뒷덜미를 잡혀 아버지 앞으로 끌려갔습니다.
끌려가는 동안 그 청명한 하늘이 먹물에 뒤엉켜 어둑했습니다. 아버지 앞에서 일어날 한 눈금도 모를 찰나의 시간이 훅 지나갔습니다. 내 인생에 가장 수위 높은 무서운 공포가 머릿속까지 헤집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그날의 풍경이 필자에게 무서운 공포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살아오면서 그 보다 무섭고 공포스러운 기억이 없습니다.
“나는 죽는구나. 아버지 앞에 가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한 걸음에 죽고 한 걸음에 살고 단 순간도 살아날 소망이 없었습니다. 드디어 주인아저씨는 아버지를 만나자마자 입에서 욕이 튕겨 나왔습니다. 땅으로 또르르 굴러 날카로운 거대한 바위가 되었습니다.
“애 교육을 어떻게 시켰기에 남의 집 가게 과자를 훔쳐 먹게 하는 거에요?”
그 정도는 점잖은 표현이었습니다. 이내 주인아저씨 얼굴은 핏빛으로 얼룩졌습니다. 온 동네가 폭풍우에 밀려가듯 목소리가 거칠어졌습니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쥐구멍이라도 찾는 시늉을 했습니다. 내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의 반응이었습니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고 주인아저씨 말에 간격이 잠시 벌어진 틈을 타 아버지가 입을 열었습니다.
“애 놀라니까 조용히 하세요.”
소리를 의심하는 버릇이 그쯤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 들은 것 같았습니다. 아버지 목소리가 그렇게 크다는 사실도 그 때 처음 알았습니다. 주인아저씨는 뜻밖의 아버지 말에 한 발자국 물러섰습니다. 그 순간을 아버지는 놓치지 않았습니다.
“애가 먹으면 얼마나 먹었기에 그래요? 내가 다 물어 줄 테니 계산해서 가져오세요.”
단호한 문장이었습니다. 그 와중에 나는 우리 아버지가 세상에서 가장 힘센 사람이라는 것을 적어도 체포된 아들 신분에서 인정했습니다. 최강 부자라는 사실도 인정했습니다. 아버지 언어가 하나, 둘 꿰맞추어지는 동안 머리 회로가 얽히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가 문제라는 진동이 가슴골을 치고 올랐습니다.
주인아저씨가 떠나고 나의 운명이 흔들렸습니다. 세상에 오직 아버지와 나만 존재하는 가장 어색한 줄타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여전히 눈을 나에게 고정시켰습니다. 조금도 흔들리거나 다른 곳을 응시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시야에 나는 꼼짝없이 묶여버렸습니다. 곁눈질하던 나는 땅이 파일 정도로 고개를 떨궜습니다. 아버지가 그 자리를 떠나 잠시 후 콜라병을 하나 들고 오더니 내 손에 올려놓았습니다.
“콜라병 들고 서있어.”
콜라병이 허공에 솟은 두 손 위에 누웠습니다. 아버지는 내 죄를 추궁하거나, 다시 혼내키거나, 잘못을 뉘우치게 하는 어떤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침묵은 61년이 흐른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자리를 비우면 어김없이 콜라병을 잡았던 손이 허공에서 내려왔습니다. 다시 아버지가 제자리로 돌아올 때면 헛기침을 해서 다시 허공으로 손이 쏜살같이 솟구쳤습니다.
훔쳐 먹은 과자 값을 생각하면 그 짧은 시간에 콜라병을 들고 서있는 것으로 마무리된 것은 내 인생에 기적이었습니다. 그 아이가 어른이 되면서 “애 놀라니까 조용히 하라”는 아버지 마음을 제대로 읽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아들 체면을 살려주는 아버지의 심장이었습니다. 가장 포악한 욕쟁이 아저씨로부터 보호하는 최후의 수단이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관계가 분리 될 수 없는 필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버지 스스로 아버지 자존심을 지키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나로 인해 아버지의 체면이 서고 나로 인해 아버지의 자존심이 구겨진다는 사실도 확인되었습니다.
그때,
아버지를 생각하면 무거운 눈물이 강을 이룹니다.
오늘,
아버지 걸음과 아들 뒷모습이 점 점 포개지고 있습니다.
[저자 소개]
백승철 목사는 "사모하는교회"의 담임목회자이며 시인, 문학평론가, 칼럼니스트, <에피포도예술과문학 Epipodo Art & Literature>의 대표이다. 다양한 장르의 출판된 저서로 25권 외, 다수가 있다. 에피포도는 헬라어로 “사랑하다. 사모하다. 그리워하다”의 뜻이다. www.epipod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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