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철의 에피포도엽서] 수필隨筆Essay 아버님의 진심 by 김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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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작가 (수필가 • 시인)
제28회 에피포도문학상 수상작품 • 아버님의 진심 by 김명수
밀레니엄이 시작하는 첫날이다. 2000년 1월 1 일 나는 대한항공 비행기 안에 있었다. 비행기는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한국 인천 공항으로 가고 있다. 1999년에서 2000년으로 바뀌며 1월 1일 컴퓨터 프로그램이 천이라는 숫자를 인식하지 못하여 비행기가 비행 도중 추락할 수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비행기 안은 거의 텅 비어 있는 느낌이다. 비행기 안은 탑승객이 거의 없었기에 무척 조용했다. 6개월 전인 1999년 여름에 똑같은 비행기 탔을 때의 비행기 안은 만 원이었기에 대조적이었다. 그 여름에 여행사에서 10살 된 아들이 어린 해병대로 참석할 수 있다 하여 편찮으신 어머님도 뵈올 겸 아들과 같이 한국에 왔었다.
밀레니엄이 시작하는 새해 첫날 한국 서울의 겨울 날씨는 무척 추웠다. 링거병과 주사 줄로 연결되어 병상 침대에 누워 계신 야위어진 어머님을 바라보니 마음이 저려오고 있다. 3년 전 속이 쓰려 위장을 체크하려 병원에 갔다가 목 갑상선 근처에 암이 있다 하여 서울대 병원에서 수술을 받아 다 완치되었었는데 다시 다른 곳으로 전이가 되었다고 한다. 어머님의 정신은 매우 맑았고 기억력도 또렷하였다. 오래 못 갈 것 같다는 의사 말을 반신반의하였다. 의사가 오진하고 있다고 믿고 싶었다. 어머님 옆에 하루라고 더 있으며 간호하고 싶었으나 곧 미국으로 되돌아와야 했다. 아버님께 겨울 철이라 약사가 모자라 직장 휴가를 오래 받지 못하여 곧 되돌아가서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미국으로 되돌아왔다.
한 3 주가 지난 후였다. 집으로 돌아오니 전화기의 메시지 빨간 불이 반짝거린다. 어머님이 오늘 돌아가셨다는 오빠의 메시지를 듣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서울에 전화를 하여 오빠와 통화가 되었다.
“아무튼 너는 여기 올 필요가 없다. 아버님이 나에게 당부하셨다. 너하고 연락되면 꼭 말하라고 했으니 여기 올 생각하지 말아라. 여기는 지금 장례식 준비하느라 무척 바쁘니까 이만 전화 끊겠다.”
다시 언니와 동생에게 전화 연락했다.
”언니 직장일 바쁜 걸 아버님이 알고 계세요. 그리고 바로 몇 주 전에 언니가 한국에 와서 어머님 보고 갔잖아요. 또 6 개월 전 여름에도 여기 왔었고요. 안녕. ”
다음날 직장에 가서 다시 3일 휴가 신청을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운전을 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갑자기 숨이 막혔다. 가슴안이 찢어질 듯 아픔이 왔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눈앞도 어질 거리며 희미해져 갔다. 주차할 만한 장소로 옮겨 차를 세웠다. 운전대를 잡고 눈을 감고 있는데 갑자기 눈물이 펑펑 쏟아진다. 얼마나 울었을까. 엄마가 곧 돌아가실 거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는데도 후회와 한이 맺혀 나를 옭아매고 있었다. 결혼하기 전 25년 동안 키워준 엄마에게 효도 한 번 못해보다니.
“미안해요. 엄마, 미안해요.”
무엇 때문에 미국에 왔는지 한이 맺혔다. 어깨까지 흔들며 울고 있는 나에게 갑자기 마치 엄마가 옆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왔다.
”울지 말아라. 사랑하는 내 딸아, 울지 말아라.”
숨이 멎을 듯 찢어질 것 같이 아파지던 가슴이 조금씩 포근하게 풀리고 있다. 비행기표를 사고 전화를 하니 오빠를 비롯해 언니 동생 모두들 나를 꾸짖고 있다.
“왜 언니 고집만 피우는 거야? 왜 아버지 말씀을 듣지 않는 거야?”
공항에도 바쁘니까 마중 나올 수 없다고 한다. 어머님이 계시는 영안실 병원으로 들어가니 다들 나에게 쌀쌀맞게 대하는 듯하다. 아버님 말씀 듣지 않고 고집 피우는 내가 무척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장례식이 모두 끝나고 손님들이 떠난 후 집으로 오기 전 동생이 사는 여의도에 있는 식당에 들렀다. 우리 가족끼리만 들어갈 수 있는 방이었다. 아버님을 비롯하여 오빠, 올케 언니, 언니, 형부, 동생 가족 그리고 남편과 나 그렇게 모였다.
”다들 수고 많이 했다.”
가족이 모인 곳에서 아버님은 모두에게 그렇게 말씀을 시작했다. 그리고 나와 남편을 쳐다보았다. 난 아버님의 말씀에 복종하지 않고 한국에 나타났기에 꾸중 맞을 각오를 하고 있었다.
“여기 있는 모두들에게 고맙지만 특히 미국에서 온 명수와 네 남편에게 제일 고맙다.”
너무나 예상 밖의 아버님의 말씀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오빠 언니 동생 모두 놀라는 얼굴 표정이다.
”너와 네 남편이 그 많은 친척들 앞에서 내 체면을 세워 주었다. 고맙다.”
아버님의 진심. 난 또 하나 배운 것 같다. 내가 힘들까 봐 한국에 오지 말라고 다른 자식들에게 당부하셨지만 아버님의 속마음은 딸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그제야 알아챘다.
아버님의 진심을 듣는 순간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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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제28회 에피포도문학상 수필 수상자, 김명수(프리몬트 Fremont) 작가(수필가, 시인)는 경기여고, 이화여자 대학교, U.C. San Francisco 약학대학, 명우문학 회원, 버클리문학 신인상 시 수상, International Poetry Contest 수상, Eber & Wein publishing에 Best Poet으로 선정, 한국일보 ‘여성의 창’ 필진을 역임했으며 작품으로 장편소설 <잎새 위의 이슬> 수필 <감나무 속의 저녁노을> 외 다수가 있다.

백승철 목사는 고려신학대학원, ORU에서 박사학위, 캘리포니아 브레아(Brea)에 위치한 <사모하는교회 Epipodo Christian Church>의 담임목회자이며 교수, 시인, 문학평론가, 칼럼니스트, 에피포도예술과문학(Epipodo Art & Literature)의 대표이다. 다양한 장르의 출판된 저서로 25권 외, 다수가 있다. 에피포도(Epipodo)는 헬라어로 “사랑하다. 사모하다. 그리워하다”의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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