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국 목사의 음악목회 이야기] 예배의 정신 By Mike Herron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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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는 예배와 섬김의 독특한 공식이 있습니다. 신명기 8:19이 우리에게 그 공식을 말해 줍니다: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좇아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면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정녕히 멸망할 것이라.”
사실은, 우리가 섬기는 것이 우리가 예배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종들로서 우리는 끊임없이 섬김을 예배 앞에 두는 위험 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너희가 정녕히 멸망하리라”는 약속된 후속 보상을 거둬들이기 시작합니다. 우리에게 신선한 영감의 은혜를 베푸는 예배의 새로워지는 갱신의 훈련과 규율이 없으면, 우리는 영적인 멸망 아니면 서서히 퇴락의 과정을 시작할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을 눅 4:8에서 이렇게 하셨습니다. “…가라사대 기록하기를, ‘주 너희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하였느니라.” 섬김 앞에 예배를 두는 것은 우리에게 힘든 일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자신의 가치를 외적 성취로 측정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하나님께서는 마음의 동기를 생각하십니다.
경배한 다음에 섬기는 것은 누가복음 4장 13절에 보여진 대로, 사탄의 유혹과 괴롭힘에 대한 해독제입니다: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 한 후에 얼마 동안 떠나니라.” “참된 예배자”를 탈선하게 하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주님을 온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해서 사랑하기 때문입니다(막 12:30). 참된 예배자는 전적으로 하나님을 섬깁니다. 왜냐하면, 그는 그의 존재의 모든 것으로 예배하기 때문입니다.
예배에 대한 신약성경의 개념 -1
희랍어에는 영어에서 “예배(worship)”로 번역된 네 개의 다른 단어가 있습니다. 각 단어는 신령과 진정의 예배를 똑바로 이해할 수 있는 열쇠를 쥐고 있습니다.
1) 프로스쿠네오(Proskuneo)
눅 7:36-50 의 이야기에 나오는 향유 옥합의 여인은 이 단어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보여줍니다: “경의를 표하여 절하다, 경외하여 존경하다, 입맞추다.” 바리새인은 예수께 음식을 주었지만(36절), 사랑도 경배도 주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그 여인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수님을 예배하는 사람의 다섯 가지 기본적인 요소를 드러내 보여주었습니다.
a) 감정(Emotions)
눅 7:38은 말합니다: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저는 감상벽으로 가득 찬 감정적 교회를 옹호하거나 지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주님을 정말 너무 사랑했기에 자신의 감정을 억제할 수 없었습니다. 당신의 영혼 깊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감동된적이 없다면, 그 깊은 샘이 터저 나올 때까지 기도할 때입니다. 생수의 강이 믿는 자의 배에서 흘러 나오기로 되어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속에서 강이 흐르는데 그것을 느낄 수 없는지 아십니까? 웃음, 울부짖음, 기쁨, 두려움 - 이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임재의 다양한 징후에 대한 타당하고 당연한 감정적 반응입니다.
b) 물질(Substance)
눅 7장 37절의 향유 옥합은 예배자에게 큰 대가를 치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옥합은 동굴이나 샘 주위의 틈새에 있는 종유석과 석순으로 물이 흐르며 증류하는 느린 과정에 의해 형성됩니다. 향유는 분쇄와 건조와 혼합의 느린 과정을 통해 만들어집니다. 예배는 우리의 가장 소중한 자산인 시간을 수반하는 과정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것은 소중하며 값을 치르는 것입니다.
c) 섬김(Service)
신실한 예배는 하나님과 우리의 동료를 섬기려는 막을 수 없는 열망을 양육할 것입니다. 38절에서 그녀는 가장 낮은 종의 행위로, 예수님의 발을 눈물을 흘리며 닦았습니다. 오늘날 교회의 그리스도인의 섬김의 결여는 그리스도에 대한 진정한 예배가 무엇인지를 드러내는 일의 결여와 관련될 수 있지 않을까요?
d) 존경(Honour)
고린도전서 11:15에서는 “만일 여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영광이 되나니…”라고 했는데, 이 여인은 자신에게 가장 영광이 되는 아름다움에 대한 자존심을 복종시키고 진정으로 모든 것을 주님의 발 아래 내려 놓고(시 8:6), 그녀의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씻었습니다. 아이작 와츠는 그의 유명한 찬송가, “주 달려 죽은 십자가”의 2절에서 그녀의 감정을 이렇게 포착했습니다:
죽으신 구주밖에는, 자랑을 말게 하소서;
보혈의 공로 입어서, 교만한 맘을 버리네.
Forbid it, Lord, that I should boast,
주님, 제가 자랑해야 할 것을 금하소서,
save in the death of Christ my God;
그리스도 나의 하나님의 죽으심 안에서 구원하소서;
All the vain things that charm me most –
나를 가장 매력적으로 만드는 모든 헛된 것들을
I sacrifice them to His blood.
주님의 보혈에 제물로 드립니다.
e) 사랑(Love)
그녀는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을 방문하는 동안 그의 발에 입맞춤을 그치지 않았습니다(45절). 예수님은 47절에서 그녀의 행위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랑은 이론적 영역에서 실제적 영역으로 변형되도록 행동으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찬송가집인 시편에서 언급된, 전폭적인 노래와 찬송과 손을 들어올림과 그 밖의 다른 표현으로 우리의 사랑을 예수님께 표현하는 시간입니다.
우리는 시편 2:12절을 듣습니다: “그 아들에 입맞추라. 그렇치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 진노가 급하심이라….” 바리새인은 사랑과 감사의 입맞춤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인정하는 데 실패함으로써 이 말씀의 저주에 빠졌습니다. 예배 없이, 그는 “길에서 망하는” 과정을 시작했습니다. 오만한 사람은 결코 성경적인 태도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마음이 낮은 겸손한 사람을 위하여 남겨둔 것입니다. <계속>
필자 김영국 목사는 대광고와 한양대학을 졸업하고 1974년 미국으로 이주, Hope International University에서 신학과 음악목회를 공부하였고, 척 스윈돌 목사와 그의 음악목사이며 스승인 하워드 스티븐슨의 영향을 받았으며, 27년 동안 남가주 오렌지카운티의 큰빛한인교회에서 사역하였다. 지금은 저서와 번역, 그리고 웹사이트 매거진 “예배음악”(Worship Music)에서 음악목회에 관한 칼럼을 쓰면서 자신의 음악목회 경험과 사역을 나누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장로교출판사가 펴낸 “성공적인 예배를 위한 음악목회 프로그램”, “성공적인 예배를 위한 찬양과 경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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