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훈의 書架멍] 내 書架 터주대감 1-3
페이지 정보
본문

계속되는 책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고, 여기서는 이 책에서 묻어나는 내 이야기를 하고 싶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돌이켜보면, 내 일생은 십 년 간격으로 매우 큰 변화를 겪어왔다.
- 1970년대: 1964년, 미국 유학을 시작으로 70년대에 이르면서 본격적 미국 생활을 하게 되고,
- 1980년대: 월급쟁이에서 자영업자로 변신, 책방 주인이 되었고,
- 1990년대: 미국 책방을 기반으로 한국으로 진출, 책 수출과 외국서적 도,소매상을 서울에 열었고,
- 2000년대: 본격적 한국 영업에 몰두하는 한편 본거지를 San Francisco에서 San Diego로 옮겼고,
- 2010년대: 내 lifestyle(생활 방식)이 날씨 좋은 San Diego에 걸맞는 스타일로 바뀌면서 은퇴 준비,
- 2020년대: 은퇴
1970년대 이야기
書架멍을 때리면서 이 책, The Story of Philosophy를 만져보니 이런저런 옛일들이 줄줄이 떠오른다. New York 출장 중 고서점을 구경하다 산 두 번째 “철학 이야기”는 헌책이지만 호화 장정, 1943년 판이다. 이 책을 살 때 나는 본격적 미국생활, 직장생활을 시작한 때, 학업도 계속하면서 내 삶의 방향을 새롭게 정하면서 나 자신을 확실하게 알게 된 때, 그리고 나다움을 만들기 시작한 때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이때 내 일상생활은 비교적 안정되어 책을 무척 많이 읽고 즐겼던 때였는데, 매일 점심 후에는 책방 아니면 음반 가게를 들르던 때… 종래 몇 해 그 짓을 하다 하루는 책 대신 책방을 사서 책방 주인이 되었다.
학교, 군대를 끝내고, 장가도 간 다음 공부를 더 하려고 1964년 도미, 자리를 잡은 다음 아내를 불러오려고 우선 나 혼자 San Francisco로 향했다. 학기 시작은 9월이지만 일찍 가 돈을 벌겠다고 2월에 출발했다. 당시 유학생에게 허용된 외화는 $100, 비행기표 사고 남은 $80을 합쳐 내 총 재산은 $180으로 내 출발점이다.
동경까지는 대한항공, 동경서 한밤 자고 다음 날 San Francisco까지는 Pan Am을 탈 예정이었다. 동경 Imperial Hotel서 잔 다음 날 미국 행인데, 호텔은 무료였지만 별생각 없이 아침을 먹고 나니 거금 $6이 빠져나갔다.
마중 나온 사람 하나 없는 San Francisco에 새벽 도착, 버스로 시내까진 잘 도착했는데, 당장 그날 해야 할 일은 살 방 마련이었다. 신문과 지도를 사서 문제 해결에 나섰는데, 우선 짐 맡기고 한잠 자야 할 호텔 찾는 일, 아파트 구하는 일, 자취할 살림 장만… 돌이켜보면 참 무모하고 황당한 짓을 저지른 거였다.
머리는 좀 굴려서 해야 할 일들을 하나씩 하긴 했는데, 그게 거의 다 실수, 웃기는 짓들이었다.
- 신문을 보면서 싼 호텔을 찾았는데, 정작 싼 호텔은 신문 광고에는 나오지도 않는다는 걸 몰랐고,
- 굳이 호텔을 구하지 않아도 되었건만 짜놓은 계획대로 진행하려고 공연한 낭비를 했고,
- 우선 호텔에 짐을 옮기고 여행 중이니 먹기는 잘 먹어야 한다는 마음에 아침은 잘 먹었는데, 정작 싼 아침거리는 수없이 많았건만 그걸 제대로 찾을 여유나 능력은 없어 그 알량한 재산만 탕진했고,
- 한 가지 잘했고, 또 운수가 좋았던 것은 아파트 구하기였다.
지도를 보면서 차이나타운 근처에 방을 얻을 생각으로 그쪽으로 가는데, 얼마를 걷자 중국 사람이 운영하는 편의점 바로 위층 셋방 광고가 보였다. 당장 찾아가니 여럿이 함께 쓰는 부엌과 화장실, 복도에 공중전화가 있는 단칸방으로, 한달 세가 $40이다. 신문에서 알게 된 최저 방세는 대충 $40 남짓, 당장 첫 달과 마지막 달 방세 $80을 내고 미국 도착한 지 몇 시간 만에 거처가 마련됐다. <계속>
조승훈
서울 고등학교, 고려대학 법과대학, University of San Francisco MBA.
San Francisco 번화가 California & Pork Street 교차점 케이블카 종점 책방 경영
1986~2018년까지, 한국으로 가장 다양하고 많은 책을 직접 선정해서 보냄
매주 주간매경 서평 8년, MBC 일요일 아침 “독서와 인생” 라디오 프로그램 3년 진행
코매디안 조모란(Margaret Cho) 씨 부친
- 이전글예수 가르침보다 법을 앞세우면 일어나는 일들 23.09.26
- 다음글[창 던지는 자의 실로암] 고대의 신론, 현대의 사라지는 교양 23.0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