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간 전화 주실 줄 알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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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배호가 선교사가 되었다고?” 제가 하와이에서 사역할 때 들은 말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배호’가 선교사가 되었다는 말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배호’라는 사람은 하와이에서 유명한 깡패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김인성이라는 이름 대신 ‘배호’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그는 젊은 시절 패싸움을 하다가 여러 발의 총탄을 쏘았고, 살인미수 혐의로 경찰에 쫓기는 신세였습니다.
그 당시 그리스도연합감리교회를 담임하셨던 박대희 목사님과 하와이에 사는 교민들의 도움으로 무기징역을 받아야 할 죄가 20년형으로 감해졌고, 결국 교도소에서 3년 반을 사는 것으로 해결되었습니다. 감옥에서 나올 때는 새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했지만, 자신을 형님이라고 부르는 후배들에 둘러싸인 그는 자기 주먹만 믿고 세상을 휘젓고 다니다가 8번이나 교도소를 들락거렸고, 마지막에는 범죄 조직을 만들고 연방법을 어긴 혐의로 캘리포니아에 있는 중범 수용소에서 다시 4년을 지내야 했습니다.
교도소에서 출소하기 전 날, 세상에 나가봐야 다시 감옥에 들어올 수밖에 없는 비참한 운명과 이번에 한 번 더 들어오면 평생 감옥에서 지내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에 밤잠을 이루지 못할 때 하나님이 그를 만나 주셨습니다. 감옥에서 나온 그는 과거를 청산하기 위해 정든 하와이를 떠나 한국으로 갔고, 어떤 목사님으로부터 딱 한 달만 다른 사람을 위해 살아보라는 권면을 받았습니다.
평생 자신만을 위해 살던 그가 처음으로 다른 사람을 위해 살려고 찾은 곳이 캄보디아였습니다. 그곳에서 여전히 미숙한 자아와 싸우면서 약속한 한 달이 끝날 때쯤 캄보디아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 딱 한 달만 살아보자고 했던 캄보디아 생활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김인성 선교사님을 10여 년 전 하와이에서 만났습니다. 김 선교사님은 평소에 아버지같이 존경하던 박대희 목사님을 뵈러 하와이에 오셨습니다. 운동으로 다져진 다부진 체격에 날카로운 눈빛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습니다. 그 후 김 선교사님을 만나기 위해 제가 캄보디아를 방문했습니다. 그는 프놈펜 시내에서 두세 시간 떨어진 ‘캄퐁치낭’이라는 마을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덜덜거리는 비포장도로를 달려 ‘캄퐁치낭’이라는 마을에 도착했을 때, ‘어떻게 이런 곳에서 선교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참을 가야 집 하나 나오는 외딴 시골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야자수 꼭대기에 올라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수액을 모아 설탕을 만드는 일을 생업으로 삼고 사는 가난한 마을이었습니다.
김 선교사님은 벽도 없이 기둥 몇 개에 간이 지붕을 얹은 헛간과 같이 생긴 마을회관에서 아이들에게 옷과 먹을 것을 나누어 주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전했습니다. 신발이 없어 맨발로 달려온 냄새나는 아이들을 김 선교사님은 안아주면서 머리를 감기고, 이발도 해 주었습니다. 마을 주민들에게는 옷과 구급약을 나누어 주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신학교 교육이나 선교사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했고, 후원 교회도 없는 초짜 선교사는 다른 선교사들이 찾지 않는 시골 마을에서 그렇게 아이들과 마을 주민들을 섬겼습니다.
몇 년 후 김 선교사님이 그 마을에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세웠다고 해서 다시 캄보디아를 찾았습니다. 겨우 땅을 마련해서 지은 작은 건물이었지만, 그 마을에서는 가장 큰 현대식 건물이었습니다. 저는 학교 완공 감사 예배를 인도했고, 마을 주민들 수백 명을 초청해서 잔치를 베풀며 학교가 시작됨을 알렸습니다. 그때 입학했던 학생들이 이제 중학교에 갈 나이가 되었고, 이번에는 그 학생들을 위해서 중학교까지 세웠습니다. 정식 학교로 인가도 받았고, 선교팀이 묵을 수 있는 선교관도 마련했습니다.
이번에 제가 캄보디아를 방문하겠다고 전화를 드렸더니 김 선교사님이 너무도 반가워하시면서 “이번에 오시면 많이 달라졌을 거예요”라고 말씀하시는데 그 세월을 지나면서 흘린 땀과 눈물, 그리고 기도가 느껴졌습니다.
전화를 끊으시면서 선교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목사님이 언젠간 전화 주실 줄 알았어요.” 선교사님의 볼멘소리에는 그동안 오랫동안 기다렸는데 찾아오지 않았다는 서운함과 곧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반가움이 엇갈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10월 중순에 캄보디아를 방문해서 깡패를 변화시켜 하나님의 일을 시키시는 은혜의 현장을 둘러보고, 김 선교사님를 격려하고 오려고 합니다. 여러분의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이창민 목사(LA연합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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