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던지는 자의 실로암] 늦봄 문익환의 『히브리 민중사』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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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봄 문익환(1918-1994)은 만주 출생의 목사님입니다. 그는 통일운동가요, 민주투사이자 민중신학자입니다. 『사상계』의 장준하 선생, 시인 윤동주와의 절친인 것으로 유명합니다. 늦봄은 공동번역성경 번역에 개신교측 번역자로 참여했으며, 구약성서를 민중신학의 관점에서 설명한 『히브리 민중사』(1990, 삼민사)를 썼습니다. 이 책은 탄생 100주년에 복간되었습니다(2018, 정한책방).
사회적 약자들의 편에 서서 활동하던 한 민중신학자의 정치참여와 그의 통일운동에 대한 평가는 더욱 상세한 논의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늦봄이 거듭된 투옥에도 불구하고 약자들, 소위 “민중”을 신학적으로 규정하고 성경적인 통찰력으로 지원했던 노력은 저와 같은 신학자이자 윤리학자의 입장에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가치가 있습니다.
늦봄이 히브리 역사에 대한 한 해석, 민중적 해석을 시도하였다는 것은 매우 독창적일 뿐만 아니라 “한국적 신학의 맹아”(萌芽)라는 의미에서 중요한 가치를 두고 싶습니다. 저는 남미의 해방신학이나 미국의 흑인신학과 같은 상황신학을 귀하게 생각합니다. 신앙은 보수적이어야 하지만, 시대에 대한 인식은 진취적이어야 합니다. 더구나 신학은 시대의 문제를 발견하고 이에 대한 성경적 담론과 답변을 제공하기 때문에, 현대적이며 처방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차원에서 늦봄의 관점과 참여는 당시의 노동자와 농민, 도시빈민과 억압적 군부정권이라는 현실에 대한 신학적 대안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안타까운 일은 정치적 실천을 동반하는 안병무, 서남동, 현영학 교수님의 1세대 민중신학이 2-3세대 민중신학자들에 의하여 신학적으로 그리 심화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예레미야에 대한 글을 마지막으로 늦봄은 이 『히브리 민중사』를 중단하였는데, 민중신학의 성경적ㆍ신학적 기반이 그 후에 지속적으로 발전되지 못한 것을 보면, 우리가 번역신학이나 기술적(記述的)인 신학에 머물러, 실천적ㆍ윤리적 차원의 필요한 연구를 진행하지 못한 후학이라 자성하게 됩니다.
늦봄의 책 『히브리 민중사』가 가진 한계도 적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을 통하여 히브리 민족에 대한 해방을 주도하셨다는 것은 옳을 뿐만 아니라 필요한 통찰입니다. 그런데 여호와와 하나님을 구별하여, 야훼를 “하비루”라는 노예 해방자로, 엘로힘 하나님을 농민해방전쟁의 주도자로 보는 것은 다분히 자의적입니다. 여호와라는 이름은 언약을 통해 이스라엘을 해방시키는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지만, 엘, 엘로힘, 엘샤다이라는 하나님은 열방의 지도자와 통치자 되신 하나님으로 보편성을 가진 신으로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늦봄이 예언자의 정체성을 거론하는 중에, 우리 민족의 무당굿, 신내림의 무속을 성령의 감동으로 발생한 라마나욧의 황홀경과 구별하지 않는 것은 심각한 영적 혼합주의라는 우려를 낳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민초(grassroot), 혹 민중에 대한 긍휼과 자비를 버리지는 않는 것은 맞으나, 민중을 우상화하거나 흠이 없는 존재로 격상시키지도 않습니다. 시내 광야 40년의 민중은 하나님을 거역함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심판의 대상이었습니다. 이사야와 하박국 선지자는 소돔의 관원과 고모라의 백성이 된 지도자와 민중에게 심판을 전합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계시는 민중이나 대중보다는 소수의 선지자를 불러주심으로 이루어집니다. 더구나 목사이신 늦봄의 책에서 덜 강조한 여호와의 주도적 사역을 공동체적 정치사상가 마이클 왈저(Michael Walzer)가 『전능자의 그늘 아래서: 히브리 성경 속의 정치』(2012, Yale)에서 강조하는 것보다 더 강조했어야 하지 않았는가 아쉽습니다.
민종기 목사(충현선교교회 원로, KCMUSA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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