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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규 감독, 1948년 건국 주장에 반기를 들다 >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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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제규 감독, 1948년 건국 주장에 반기를 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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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NEWS M| 작성일2023-11-06 | 조회조회수 : 4,08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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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1947 보스톤' 리뷰 



    강제규 감독의 첫 단독 연출작 ‘은행나무 침대(1996년)’는 SF와 역사물을 혼합한 작품으로 흥행에 성공하며 강감독을 주목하게 만들었다. 이어 ‘쉬리’ (1996년)는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를 이끈 작품으로 평가되며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극중 북한 특수요원들의 잔혹한 훈련 장면으로 북한을 악마화한 ‘반공영화’라는 혹평도 있었으나 남북의 요원(한석규 김윤진)이 진실한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만으로도 기존의 반공영화 문법은 벗어났었다.


    다음 작품인 ‘태극기 휘날리며(2004년)’는 장동건과 원빈 형제가 겪은 한국전쟁의 이야기다. 공부잘하던 동생(원빈)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남한과 북한 어느 군에도 참전할 수 있는, 다시말해 주적 개념이 동생의 향방에 따라 바뀌었던 형 장동건의 광란의 한국전쟁 참전기(參戰記)다. 일부 평론가들은 장동건의 광기가 말이 안되는 소리라고 폄하했으나 한국전쟁의 성격을 보면 충분히 가능한 설정이다.


    그러나 강제규 감독은 항상 2%가 부족했다. 한국 전쟁의 성격을 보여주기에는 ‘웰컴 투 동막골(감독 박광현, 2005년)’과 ‘고지전(감독 장훈, 2011년)’의 문제의식에 못미쳤다. 강감독은 기존의 반공영화 문법에서 탈피하려는 노력을 보여 주었으나 대리전으로서의 한국전쟁의 성격을 영화에 담는 데는 실패했다.


    승승장구하던 강제규는 2011년 ‘마이 웨이’라는 망작으로 무너지고 이후 제작으로 방향을 돌렸다. ‘마이 웨이’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생포한 독일군 포로중에 동양인이 있었던 사진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이 영화에서 제 2의 손기정을 꿈꾸던 조선 청년 준식(장동건분)과 일본 마라토너 타츠오(오다기리 조분) 두 청년의 경쟁과 우정이 주요 소재다. 2차 대전에 참전하게 된 두 청년이 중국과 소련, 독일을 거쳐 노르망디에 이르는 12,000Km의 전쟁 여정에서 서로를 확인한다는 이야기는 한일관계를 고려하면 감동을 주기 어려운 대목이었다. 영화의 홍보 문구 ‘적으로 만나 서로의 희망이 된 조선과 일본의 두 청년, 국적을 초월한 인간애의 드라마가 시작된다!’는 당시 이명박 정부의 대외 굴종적인 기류를 감안하면 강제규의 완전한 패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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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에서 서윤복 역을 맡은 배우 임시완이 역주하고 있다
     

     

    2023년 개봉된 ‘1947 보스톤’은 ‘마이 웨이’이후 9년만의 작품이다. 영화는 2020년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여러가지 이유로 미뤄지다가 2023년 개봉한 이 작품에서 강제규는 ‘마이웨이’에서 실패한 경험을 되살리지 않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영화는 손기정과 남승룡, 서윤복이 한 팀이 되어 1947년 보스톤 마라톤 대회에서 서윤복이 1등을 차지하게 된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현 정부와 일본의 관계를 고려할 때 충분히 흥미를 끌만한 ‘국뽕적’ 자극을 주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성적표는 냉정했다. 450만명이 손익분기점이라고 하는데 10월 19일 현재 100만을 넘지 못했다. 영화의 성격상 OTT시장에서는 인기를 끌만한 요소를 갖추고 있어 OTT로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이 세운 마라톤 세계 신기록이 1947년 보스톤에서 서윤복에 의해 깨어진 점에 주목했더라면 영화의 방향에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2차 대전으로 각종 세계경기가 중단되었다가 1947년에 재개된 첫 마라톤 대회였기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영화는 조선의 기록이 아니라 일본의 기록으로 남아 있는 손기정의 나라 잃은 슬픔과 1947년 미군정 치하에서 역시 나라 없는 설음으로 태극기를 달지 못할 뻔 했던 서윤복의 경우를 비교하면서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예비 관객들의 입장에서는 ‘나라 잃음’ 또는 ‘나라 없음’이 더 뚜렷하게 나타나는 현시국에 더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에 극장을 찾지 않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영화는 ‘국뽕’을 넘어 새로운 사실을 가르쳐 준다. 미군정과 주최측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서윤복은 태극기를 달고 1등 시상식에 섰다는 사실, 그리고 현재의 애국가 가사에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의 곡이 붙은 애국가를 불렀다는 사실을 관객에게 각인시켜 준다.


    그렇다. 뉴라이트가 주장하고, 그리고 현 정부가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어 안달인 1948년 건국 주장 이전에도 대한민국은 존재했다. 그것은 헌법 전문에도 포함되어 있는 엄연한 사실이다. 그들은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과 남승룡(당시 3위)이 가슴에 일장기를 달 수밖에 없었던 현실에서 손기정은 월계수로 일장기를 가렸고 월계수를 받지 못했던 남승룡은 슬랩스틱을 하던 시절 코메디언들의 옷차림처럼 바지를 한껏 추켜 올려 속칭 ‘배바지’ 형태로 일장기를 가리려 했었다. 그 태극기를 그리워하던 시절은 바로 대한민국의 이름을 걸지는 못했지만 나라가 있던 시절이었다.


    영화는 고증에도 충실했다. 손기정의 양정고보 시절 그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던 무교회주의자 김교신도 나오고 양정고보의 캠퍼스도 담으려고 노력했다.


    남승룡이 베를린에서 3위를 하던 시절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1936 베를린 올림픽에서 2시간 31분 42초의 기록으로 동메달을 딴 남승룡에 앞서 2위로 골인한 영국의 어니스트 하퍼는 거의 실신할 듯이 기진맥진한 반면 남승룡은 완주하고도 기운이 남아서 제자리 뛰기를 하며 손기정에게 축하의 말을 건낼수 있었다. 그의 동메달 획득은 막판 스퍼트로 30명 정도의 선수들을 앞지른 결과였다는 점에서 놀라운 것이었다”(나무위키 참조)


    남승룡은 코치와 선수 신분으로 1947보스톤 대회에 참가했다. 여기서 중년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막판 스퍼트로 10위로 골인해서 제자리 뛰기를 하며 서윤복에게 축하의 말을 건넨다. 영화는 베를린에서 있었던 일을 보스톤에서 일인 것 처럼 다루지만 이것은 잘못된 고증이 아니라 남승룡에 대한 헌사로 보였다.


    영화는 우려와 달리 ‘국뽕’과 ‘신파’를 자제한 노력이 있어 볼만하다. 현재의 관객 스코어가 안타까울 따름이다. 영화 홍보를 이 기사의 제목처럼 ‘강제규 감독, 48년 건국 주장에 도전하다’로 했으면 흥행에 성공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다. 아니다. 그랬다면 영화사와 강제규 감독 자택이 압수수색 당했을라나?


    강제규 감독은 차기 작품으로 우키시마호를 다룬 영화를 준비중이라고 알려졌다. 우키시마호(부두호)란 강제징용에 끌려갔던 선조들이 해방을 맞아 고국으로 귀환 중 의문의 침몰사고를 당해 수백명의 목숨을 잃게 한 그 선박이다. 심증으로는 강제 징용자들의 증언으로 자신들의 만행이 드러날까 두려워한 일본의 소행으로 보이지만 물증은 없다. 강제규 감독의 화려한 재기를 기원한다.  


    김기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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